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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의 저자 유홍준 씨가 "장중하면 맑기 어렵고, 맑으면 장중하기 힘든 법이건만 이슬처럼 영롱하고 맑은 소리를 모두 갖추었다"고 평한 에밀레종의 복원을 위해 남은 생마저 바치겠다고 말한다.
 1942년 경기도 화성군 남양면에서 출생한 원광식 씨는 열일곱 살에 자동차 기술을 배우려 상경했다가 종을 제작하는 8촌형을 만났다.
 "8촌형님 곁에서 다양한 종을 만드는 기법을 배웠지만 군을 제대한 1962년까지 그 일이 제 천직이 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지요."
 현대 과학으로도 풀지 못한 섬세한 기술을 배운다는 자부심으로 가슴 뿌듯해하던 그때 그에게 시련이 찾아왔다. 종을 만드는 외형 틀이 무너지면서 흘러나온 쇳물 한 방울이 그의 오른쪽 눈에 들어간 것이다. 그는 하루아침에 한쪽 눈을 실명했다.
 그때가 신혼의 단꿈에 젖어 행복한 미래와 가정에
대한 기쁨으로 하루가 마냥 벅차오르던 스물여섯 살의 새파랗게 젊은 나이였다.
 그 후로 농사를 짓겠다고 낙향해 땅을 일구길 2년여. 그러나 종과의 인연은 쉽게 끊어지지 않았다.
 1970년 수덕사에서 종을 제작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당시 종 불사를 책임지고 있던 법장스님(현 주지)에게 "이문도 필요없으니 재료만 구입해주면 제대로 된 종을 제작해 보겠다"고 나섰다.
 그 길로 가족과 함께 수덕사로 내려가 대웅전이 올려다 보이는 한구석에 주물공장을 세우고 조석예불을 올리며 꼬박 3년을 보냈다.
 "한 번을 치면 2분 30초 동안 울리고, 소리가 30리에 이른다"며 수덕사 대중들이 입에 침이 마를 정도로 칭찬하는 이 종은 해방 후 처음으로 제작된 1,000관에 달하는 대종으로 완성 후에는 그를 향한 언론의 주목이 이어졌다.
 그는 작은 종에서부터 큰 종에 이르기까지 주철장으로서의 기술을 익히는 데 천부적인 재능을 보였고 본격적으로 종을 제작하기 위해 1973년 8촌형 원국진 씨가 세운 성종사를 인수했다.
 전세계적으로 그 위상이 드높던 신라시대의 주조기법이 제대로 전수되지 못해 종 제작 전문가인 원광식 씨도 맥이 끊어진 종의 역사를 되살리기란 힘겨웠다고 한다.
 "한국을 대표하는 에밀레종과 상원사종이 모두 밀랍주조공법으로 만들어졌는데 그 공법이 완전히 소멸돼 버렸으니 얼마나 난감했겠습니까?"
 밀랍주조공법은 밀랍과 소기름을 적당한 비율로 배합하여 만든 초로 모형을 제작한 후 외부에 주물사를 반죽해 두께를 주고, 이후 열을 가해 초 모형을 제거한 후 쇳물을 붓는 공법을 말하는데 제작자의 정교함이 그대로 배어나는 기술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밀랍주조공법이 아니면 우리 선조들이 제작한 옛 종의 정교한 문양을 재현해 낼 수 없다고 판단한 그는 일본으로 유출된 신라·고려·조선시대의 종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연구했다.
 그렇게 보낸 10여 년 간의 세월이 헛되지 않았던지 드디어 1997년 광명사종을 복원하며 밀랍주조공법을 재현해 내는 데 성공했다.
 그 공로와 능력을 인정받아 그는 2001년 대한민국 명장과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종 제작에 있어서 세계 최고로 인정받고 있는 그가 만든 종은 청아하면서도 은은하고 긴 여운을 남긴다. 또한 정교하고 아름다운 문양을 담고 있어 그것만으로도 훌륭한 예술작품으로 손색이 없다.
 "한쪽 눈을 잃은 사고를 겪고도 지금까지 종 제작에 몰두할 수 있었던 것은 주위에 나를 도와주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죠. 범종의 이론적인 토대를 위해 결성된 '한국범종연구회' 분들, 삼겹살에 소주 한 잔 걸치며 종 제작하는 데 동고동락하는 작업장 가족들, 눈을 잃고도 종 제작에 미친 듯 살았던 나를 지지해 준 아내와 아이들 모두 제겐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사람들입니다."
 항상 겸손한 마음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 충실하자는 게 생활신조라는 원광식 씨. 그에겐 천년의 종소리 재현에 고스란히 인생을 묻은 장인의 열정만큼이나 집착과 번뇌의 고통을 벗은 수행자의 모습이 엿보이기도 한다.
 한국 범종의 살아있는 역사이기도 한 그는 매년 100구가 넘게 조성한 종을 모아 2005년까지 '종 박물관'을 건립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천년의 세월을 간직해 오다 이제 수명이 다해 더 이상 타종이 어렵다는 에밀레종 소식에 그는 요즘 더 분주하다. 에밀레종의 소
리를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를 능가하는 범종을 만들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느라 밤잠을 설치는 날도 많아졌다고 한다.
 한 해를 보내는 아쉬움과 새해를 맞이하는 기대감이 교차하는 제야에 울려퍼지는 보신각 종소리. 영혼을 흔드는 듯한 그 소리도 원광식 씨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천년의 소리, 바로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