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레종 반드시 복원 '천년의 소리' 들려줄 터

종소리에 ‘완전히’ 미친 사람! 주위 사람들이 원광식(65)씨를 그렇게 부른 지 오래다. 결혼 후 석 달 만에 종을 만드느라 한쪽 눈까지
잃었으니 그럴 법도 했다. 원씨는 충북 진천군 덕산면 합목리에 2.5t짜리 용광로 22개를 갖춘 성종사 대표를 맡고 있다.
국내 범종 제작 1인자로 꼽히는 그가 종에 정을 붙인 지도 올해로 49년째를 맞는다.

그런 그가 요즘 종 만드는 일에 다시 미쳤다. 원씨는 1200여년 전 통일신라시대의 에밀레종(성덕대왕신종)
복원에 혼신의 힘을 쏟고 있다. 천년의 소리를 재생해 후손들에게 들려주기 위해서다.

안타깝게도 현재 경주국립박물관에 보관된 에밀레종은 노화가 심해 예전의 아름다운 소리를 내지 못하고 녹음된
기계음만 사람들에게 들려줄 뿐이다. 그동안 학계와 문화재청에서 이 종을 복원하려고 갖은 노력을 다했지만
모두 실패했다고 한다.

“3년 전 경주에 가서 석고로 에밀레종 모형을 떠왔어요. 2009년이면 복원된 새 종을 볼 수 있을 겁니다.”

환갑을 훌쩍 넘긴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그의 자신감이 당차다. 하지만 범종 복원에 드는 막대한 제작비가
큰 부담이 되고 있다. 종을 만들려면 동과 주석 25t이 들어가 제작비가 32억원을 웃돌 것이기 때문이다.

에밀레종 소리를 재현하는 제작 기술의 비밀은 스스로 밝혀냈다고 그는 자신한다. 그는 각고의 노력 끝에 그간 맥이 끊긴
‘밀랍주조기법’을 수백년 만에 재현해냈다. 그 공로로 2001년 중요무형문화재 112호로 지정됐다. 지금까지 그의 손을 거쳐
탄생한 종만도 오대산 상원사 범종, 광주 민주의 종, 충북 천년대종, 조계사 종, 싱가포르 복해선원 종 등 7000개가 넘는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절이나 지방자치단체에 걸린 이름값 하는 종들은 그가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은 강원도의 평화의 댐에
설치될 37.5t짜리 초대형 종을 만들고 있다. 

                                

경기 화성에서 태어난 그는 평생 종 제작을 업으로 살아온 할아버지(원덕중)와 8촌 형(원국진)에게서 기술을 전수받았다.
중학교를 마치고 자동차 정비를 잠시 배웠으나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17살 무렵, 할아버지와 8촌형이 운영하던 성종사에
들어가면서 종과의 길고 긴 인연이 시작됐다.

“놀기가 뭐해 배운 일이 이렇게 인연이 질길 줄 몰랐어요. 아마도 그게 제 업인가 봐요.”

1960년대 들어 경제가 나아져 종을 찾는 절과 교회가 많아 정신없이 일했다고 회고했다. 어느날, 그에게 뜻하지 않은 시련이 찾아왔다.
결혼하고 석 달 뒤 종을 만들다가 거푸집에 부은 쇳물이 폭발하면서 그만 한쪽 눈을 잃고 말았다.

“신혼의 단꿈에 빠진 젊은 나이에 눈을 잃고 나니 세상이 너무 허무하더라고요. 종 만드는 일을 접고 1년 동안 농사를 지었죠.
그런데 농사일을 끝내고 잠자리에 들면 이상하게도 머릿속에 종들의 소리가 들려오는 겁니다.”  
                              

 종 만드는 일이 천직임을 깨달은 그는 1970년 작업장으로 되돌아왔다. 그러다 충남 예산 수덕사의 주문을 받아 국내 최대의
범종 제작을 맡은 것이 새로운 전기가 됐다. 머리를 깎고 대웅전 옆에 작업장을 만들어 종 제작에 꼬박 3년을 매달렸다.

“새로 만든 종을 타종했는데 종소리가 삼십리까지 퍼져 나간다며 떠들썩했어요. 신문과 방송에서도 보도돼 제법 이름이 알려졌죠.”

73년 8촌형이 세상을 떠나 성종사를 맡게 됐다. 그의 기술이 입소문을 타면서 주문도 줄을 이었다. 범종 제작자로서 명성을 얻었지만
가슴 한구석에는 여전히 허전했다. 옛날 장인들이 만들어낸 신비의 소리를 재현하지 못했던 까닭이다.

종 제작 비법을 반드시 찾아내겠다는 각오로 일본으로 건너갔다. 일본 절을 방문해 일제가 빼앗아간 신라·고려시대의 종 5개를
실리콘으로 복제해 이 중 1개를 주물기법으로 복원했다. 결과는 참담했다. 에밀레종의 은은한 소리와는 영 딴판이었다.

옛 조상들이 사용했던 ‘밀랍주조’ 기법 연구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기법은 전설처럼 전해지고 있을 뿐 조선 중기 이후 맥이
끊겨 국내 어느 문헌에서도 기록을 찾을 수 없었다. 결국 스스로 비법을 찾아내는 도리밖에 없었다. 혼자서 종을 만들고 부수기를
수없이 되풀이했다. 7년간의 연구 끝에 마침내 신라시대에 사용됐던 흙틀을 재현하는 데 성공했다.

이렇게 찾아낸 밀랍주조 기법을 사용해 1992년 일본 시마네현 광명사에 있는 신라 종을 처음 복원했다. 몇해 전엔 산불로 녹아내린
낙산사 동종(보물 479호)을 이 기법으로 만들기도 했다. 그가 복원한 200여개의 종들은 2005년 9월 개관한 진천군 종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진천군이 종에 대한 원씨의 열정에 감동해 번듯한 박물관을 지어준 것이다.

“평생을 종과 함께 살아왔지만 옛 장인들의 신비한 종소리에는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꾸밈없이 겸손한 그의 말소리가 그토록 그가 만들고 싶어하던 에밀레종 소리처럼 은은하게 들려왔다.

진천=김을지 기자 ejkim@segye.com